스물셋, 낯선 계약서와 등기부등본 위에서 나의 계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매일같이 똑같은 빌라와 아파트의 도면을 읊고, 더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목소리에 에너지를 소진하며 살아가던 날들이었다. 문득, 이대로는 내 청춘이라는 무형자산의 가치가 0에 수렴하겠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그래서 떠났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그저 가장 멀고 낯선 곳으로 나를 던지고 싶다는 충동 하나로 이탈리아 9박 10일 패키지여행을 예약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고, 어쩌면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어리석음 덕분에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색의 하늘과 바람을 만났다.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설렘보다는 피로였다. 장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로마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의 공기는 10월이라고 하기엔 제법 후텁지근했고, 수많은 인파 속에서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고역이었다. 계약 잔금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초조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첫날부터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로마 시내로 들어서는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스치는 모든 풍경은 엽서 속 이미지 그대로였지만, 그 감흥은 곧이어 마주한 인파의 장벽 앞에서 무참히 흩어졌다.
콜로세움은 거대했다. 정말로, 압도적으로 거대했다. 2천 년의 시간을 버텨낸 석조 구조물의 장엄함 앞에서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 감동은 딱 5분이었다. 내 시야를 가리는 각국의 셀카봉들과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플래시,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최고의 사진 각도를 선점하려는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서 고대 로마의 영광 따위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저 이 거대한 원형 경기장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었을까, 지금 평당가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하는 속물적인 생각을 하며 군중 속을 떠밀려 다녔을 뿐이다. 이곳은 유적지가 아니라, 거대한 테마파크에 가까웠다.
패키지여행의 가장 큰 비극은 식사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다. 첫날 저녁으로 나온 카르보나라는 내가 한국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꾸덕한 크림 파스타와는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 계란 노른자와 치즈, 후추로만 맛을 낸 정통 방식이라는데, 내 혀는 그 낯선 꾸덕함과 짠맛 앞에서 길을 잃었다. 마치 처음 보는 형태의 건축물을 이해해야만 하는 건축학도처럼, 나는 꾸역꾸역 면을 넘기며 생각했다. 아, 여행이란 이토록 낯선 것들과의 불편한 동거로구나. 하지만 이 불평 가득한 하루의 끝에서, 나는 인생 최고의 젤라토를 만났다. 가이드가 “여긴 그냥 동네 가게예요”라며 무심하게 안내한 곳이었다. 피스타치오 맛 젤라토 한 스푼이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순간, 로마의 소음과 인파의 스트레스가 함께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차갑고, 달콤하고, 그리고 더없이 고소했다. 그 순간만큼은, 로마가 나를 위로해주는 듯했다.

로마를 떠나 피렌체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의 시간은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다. 좁은 좌석과 끝없이 이어지는 고속도로 풍경. 창밖으로 스치는 토스카나의 구릉과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허리와 목의 통증은 그 아름다움을 음미할 여유를 앗아갔다. 중간에 들른 가죽 공방은 노골적인 상술의 현장이었다. 나는 공인중개사로서 수많은 상가를 중개했지만, 이렇게까지 구매를 압박하는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일행들이 가죽 재킷의 품질을 논하는 동안, 나는 구석에 서서 이 공간의 임대료와 권리금은 얼마일까, 쓸데없는 계산이나 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렌체는, 이 모든 불평을 잠재울 만큼의 힘을 가진 도시였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본 피렌체의 전경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붉은 지붕들이 노을빛에 물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그림 같았다. 두오모 쿠폴라의 장엄함, 베키오 다리 위를 오가는 사람들의 활기.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이었다. 나는 그저 난간에 기댄 채, 도시가 서서히 어둠에 잠기는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옆에서는 누군가 프로포즈를 하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지만,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 풍경에만 몰두했다.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히던 피로와 냉소가 그 붉은빛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지는 듯했다.
그날 저녁, 나는 일행과 떨어져 혼자 작은 트라토리아에 들어갔다. 메뉴판을 읽을 깜냥도 안 되어 손짓 발짓으로 추천받은 라구 파스타와 와인 한 잔.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그 저녁 식사는 이번 여행 최고의 한 끼가 되었다. 깊고 진한 소스와 잘 익은 면, 그리고 모든 것을 감싸주는 향긋한 와인.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고, 아무도 내게 무언가를 팔려 하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혼자만의 식탁 위에서, 나는 조금씩 이탈리아와 화해하고 있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의 기억은 안개처럼 희미하고 축축하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지쳐 있었다.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에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베네치아의 명성은 오히려 거대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산 마르코 광장은 발 디딜 틈 없는 인파로 가득했고, 리알토 다리 위에서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과 지나가려는 사람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었다. 낭만적인 곤돌라는 한낱 호객 행위의 수단처럼 보였고, 수로에서 올라오는 쿰쿰한 냄새는 머리를 아프게 했다. 최악이었다.

“이게 다야? 이게 그 베네치아라고?” 나는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호텔로 돌아와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시차 때문인지 아니면 불편한 잠자리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고,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젖은 골목길을 비추고 있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나는 카메라 하나만 챙겨 호텔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진짜 베네치아를 만났다.
관광객이 사라진 새벽의 베네치아는 어젯밤의 그 도시가 아니었다. 짙은 물안개가 수면 위를 유영하고, 좁은 골목길은 완벽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들리는 것이라곤 내 발소리와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물결 소리뿐. 어둠과 안개 속에서 도시의 낡고 오래된 건물들은 신비로운 실루엣을 드러냈다. 빛바랜 벽과 이끼 낀 계단, 굳게 닫힌 창문들. 그 모든 것들이 수백 년의 이야기를 품은 채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마치 유령처럼 도시를 배회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걷고 또 걸었다. 이따금씩 물건을 실어 나르는 작은 배가 안개를 가르며 지나갈 때, 그 엔진 소리마저 이 고요한 아침의 일부가 되는 듯했다. 어젯밤 나를 괴롭혔던 그 많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 도시의 본모습은 어쩌면 이 고독한 새벽에만 잠시 얼굴을 내미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순간, 나는 베네치아가 왜 ‘물의 도시’가 아니라 ‘침묵의 도시’라 불려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친퀘테레는 패키지의 선택 관광 코스였다.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는 사실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탈리아에 왔으면 여긴 가봐야지’라는 무언의 압박에 못 이겨 신청했다. 꼬불꼬불한 해안 절벽 길을 달리는 버스, 그리고 다시 기차로 갈아타는 번거로움.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다섯 개의 마을은 멀리서 보기엔 분명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고행에 가까웠다. 특히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기차역은 몰려든 관광객들로 언제나 만원이었다.
마나롤라의 유명한 포토 스팟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파스텔 톤의 집들이 절벽을 따라 층층이 쌓여 있고, 그 아래로는 투명한 리구리아 해가 펼쳐지는 풍경. 모두가 감탄사를 연발하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아름다웠다.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아름다움 앞에서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아, 인터넷에서 보던 그 사진이랑 똑같네’라는 생각뿐. 너무 많은 사람이 같은 곳을 보고,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고, 같은 감탄사를 내뱉는 그 풍경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인파를 피해 한적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그곳에서 담벼락에 기대앉아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는 어쩌면 진짜 여행은 이런 유명한 풍경이 아니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골목의 그늘이나 이름 모를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르자, 나는 거의 모든 것에 무감각해졌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베로나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연극 무대 같았지만, 줄리엣의 집에 매달려 편지를 쓰는 사람들을 보며 사랑의 위대함보다는 상술의 집요함을 느꼈다. 피사의 사탑은 생각보다 훨씬 더 기울어져 있었지만, 모두가 똑같이 탑을 떠받치는 포즈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나는 멀찍이서 구경만 했다. 그저 정해진 동선을 따라 움직이고, 가이드의 설명에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로마로 돌아가던 길, 우리는 마지막 도시인 오르비에토에 들렀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언덕 위의 작은 중세 도시.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위안을 받았다. 오르비에토는 조용했다.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았지만, 도시 전체에 평화로운 온기가 감돌았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마주친 두오모 성당은 그 정교하고 화려한 파사드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위압적이지 않았다. 나는 성당 앞 계단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따스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의 웃음소리를 듣고, 그저 그 평범한 오후의 일부가 되어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여행이 끝났다. 다시 돌아온 서울의 공기는 익숙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더 차갑게 느껴졌다. 캐리어를 끌고 도착한 나의 작은 원룸. 창밖으로 보이는 빼곡한 빌라들의 불빛을 보며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고, 불편하고, 때로는 실망으로 가득했던 9박 10일이었다. 프로 불평러인 나에게 이탈리아는 더없이 좋은 불평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끄러운 경적 소리 너머로 베네치아의 물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빽빽한 건물들 사이로 피렌체의 붉은 노을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스물셋의 나는, 이탈리아에서 완벽한 휴식이나 낭만적인 위로를 얻지 못했다. 대신 나는 지독한 피로와 낯섦, 그리고 수많은 불편함 속에서 아주 가끔씩 마주치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법을 배웠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통제된 부동산 계약서와는 전혀 다른, 예측 불가능하고 불완전해서 더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겪었다. 여행은 나를 바꾸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불평 많고 시니컬한 공인중개사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가장 빛나는 순간은 종종 가장 큰 혼돈 속에서, 가장 지친 마음 끝에서 불쑥 찾아온다는 것을. 그것이 내가 그 지독했던 이탈리아를 다시 그리워하게 될 이유일 것이다.
💡 여행 팁 정리
- 패키지 선택의 명과 암: 당신이 J형 인간이 아니라면, 패키지는 편하다. 하지만 식당과 쇼핑센터에서 당신의 선택권은 0에 수렴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선택 관광’이라는 이름의 강매 아닌 강매에 대비한 정신적, 금전적 준비가 필요하다.
- 새벽을 지배하는 자가 도시를 얻는다: 로마든, 피렌체든, 베네치아든, 인파에 치여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다면 남들보다 2시간만 일찍 일어나라. 아무도 없는 텅 빈 유적지와 골목을 독차지하는 경험은 그 어떤 비싼 투어보다 가치 있다.
- 카페인 수혈의 법칙: 이탈리아에서 아침 11시 이후에 카푸치노를 시키는 건, 서울 한복판에서 외국인이 “김치 좀 덜 맵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당신을 이상하게 쳐다볼 것이다. 오후엔 깔끔하게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현지인들의 멋을 따라 해보길.
- 유적지는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같은 거대 유적지는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인파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차라리 그 주변 언덕이나 한적한 곳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편이 더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
- 신발은 전투화 수준으로: 10일 동안 당신이 마주할 대부분의 길은 돌바닥(코블스톤)이다. 멋 부린다고 신은 불편한 신발은 당신의 발과 여행 전체를 지옥으로 이끌 것이다. 무조건 가장 편하고 튼튼한 운동화를 챙겨라. 멋은 포기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 혀를 위한 보험, 젤라토: 아무리 맛없는 현지식에 실망했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마라. 이탈리아 어디에서나 젤라토는 당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하루의 피로와 실망감을 씻어주는 최고의 명약이다.
- 감정적 안전거리 유지: 너무 큰 기대를 품지 마라. 엽서 속 풍경은 수백만 명의 관광객과 셀카봉, 그리고 자릿세를 요구하는 상인들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위대한 유산 앞에서 실망하기보다, 이름 없는 골목길에서 소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서 기쁨을 찾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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